비행전



 



 이번이 몇 번째 야간비행인지는 알 수 없다. 적지 않게 쌓인 플라이트 로그를 봐야 결과가 나올 종류의 것이다. 대충 모르겠다고 아무렇게나 구글신에게 물어봐도 나오지 않는다.
 언제나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달빛을 받으면서 야간비행을 하는 것은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 찝찝하다는 기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고도는 3500, 단위는 피트(feet), 대기속도 350, 물론 단위는 항해 쪽에서 많이 쓰는 해리로 원어는 노티컬 마일, 약어로 노트(knot)라고 한다. 월광은 많이 잡아먹은 하현달이며, 3200피트 고도에 20% 정도의 구름이 깔려서 회색 쿠션처럼 빛난다. 우측 2시 방향, 약간 위로 20m떨어진 위치에는 마침 중대장 샤크의 팬텀 [에이미]가 약간 모여 있는 별무리를 특유의 거대한 실루엣으로 가려버렸다. 국제적으로 규정된, 그리고 항해 쪽에 기원을 가진 적색과 청색의 항법등과 위치표시등 같은 것은 하나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 물론 샤크 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출동한 편대기 전원이 그런 것이긴 하다.

 다시 한번 스코프에 다수의 블립(blip)이 빛났다. 이번엔 서쪽으로 약간 옮겨간 위치다. 안테나 방향을 나타내는 바(bar)가 한바퀴를 돌아서 다시 접촉할 때까지는 2초에서 3초정도 걸린다. 그리고 그때는 또 서쪽으로 치우친 위치에서 접촉할 것이다.

 중앙아프리카민주공화국 육군 9군단 직할 19지원단의 소속으로 브리핑 받은 물자집적소에 대한 타격은 그런대로 성공한 듯하다. [라이언]편대가 집속탄을 투하하기 직전, 주변의 SAM과 Triple-A를 제압 또는 제거하는 위험천만하기로는 둘째가기 서럽다는 SEAD임무를 배정받았지만 천운인지 7기로 이루어진 제1비행중대는 별 피해가 없다. 사실 1중대의 편제는 8기로 이루어지지만 츠바이와 제리의 독일인 콤비가 탑승한 팬텀이 무장배선 쪽의 트러블로 이륙 전에 임무포기를 해버리는 바람에 투입된 기체는 7기로 줄어버린 것이다.

 “역시, 잡았다.”
 서쪽으로 치우친 위치에서 4개의 블립이 빛났다. 고도는 3300에서 3500까지, 여기에서 돌리는 로우밴드의 장거리레이더는 위협경보수신기의 반응범위에서 벗어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중앙아프리카민주공화국 방공통제사는 채널을 돌려 블립주변에서 동원 가능한 대공무기를 갖춘 부대를 호출했다.

 중대 차선임인 아이스맨의 미라지 F1 [베르단디]도 아무 상처없이 잘 날고 있다. 윙팁 레일런처에 올린 매직 유도탄은 사용할 일이 없었고, 센터 파일런의 보조연료탱크도 비어있지만 드롭시킬 일은 없었다. 대신 날개 하부 내측 파일런에 매달고 있던 클러스터 폭탄들은 표적지역에 말끔하게 던져주고 왔다. 아마도 총 302개의 자탄 중 10% 이상은 불발탄으로 남아서 나중을 기약하게 되겠지만 이들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방공통제사에게는 매우 즐겁게도 항적의 예상 진로에 저고도 레이더의 지원을 받는 단거리 지대공 유도탄 팀이 포진 중이었다. 원래는 진지로 사용되지 않던 지점이었으나 바로 3일전부터 배치된 제12사단 예하 방공대대의 파견 소대로 야간조준기를 더한 재블린을 장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락을 받고 자리를 잡은 사수는 지역을 책임지는 제2야전군 최고의 사수로 칭송받았다.

 “올 퍼스트, 여긴 샤크. 잠시 후면 에리어1이다. 각자 헤드카운트.”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중대장 샤크가 헤드카운트를 시작한다.
 “아이스맨, 체크…이글, 첵…슬래시, 첵…맥, 첵…블루, 첵…히콕, 첵."
 전원 이상무다. 약간 남쪽에 치우쳐서 역시 서쪽으로 날고 있을 [라이언]편대는? 상관없다. 그네들은 제대로 된 군번을 받고, 군기가 바짝 든 정규군이니까. 뭐, 그런거다. 이들 제1비행중대는 제네바 전쟁법규에 의한 전쟁포로에 대한 보호규정을 받지 못한다. 용병, Mercenery 또는 예니체리라고도 하는 부류니까.
 이들이 믿을 것은 자기자신뿐, 이 바닥에 불문율로 전해오는 한마디가 있지 않은가.
 ‘마지막 총알은 자신을 위해서 남겨둬라.’

 황무지에 위장포를 뒤집어쓴 탑차 위로 뻗어 나온 붐 위에서 소형의 안테나가 상당한 고속으로 수초동안 회전하고 멈췄다. 탑차 안에서 스코프를 응시하던 병장이 마이크 키를 잡는다.
 
 이번에는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서 고주파대역의 레이더 전파가 작동했다. 계기판 한귀퉁이에 위치한 RWR 디스플레이에 지대공 레이더를 나타내는 심볼이 몇 번 깜빡이고는 다시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표시되지 않고 사라지자 아이스맨은 긴장을 풀고 다시 외부로 신경을 돌렸다.
 솔직히 접적지역이며, 대공화기 밀집지역인 코드네임 [에리어1]을 통과하는 것은 적지 않게 까다롭다. 말이 대공화기 밀집지역이지 멀리는 두 번째 대전 당시의 [캄후버 라인]에서부터, NAM의 악몽으로 기억되는 [샘 시티], 가까이는 이제는 역사 속에서나 국명을 찾아볼 수 있게 된 모국가의 수도를 계승하는 악마의 정원에 다름 아닌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그림 같은 지중해의 해안선에서 시작해서, 남쪽으로는 뭐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중부아프리카의 정글지대까지 뻗은 [에리어1]의 동서편으로는 양측의 지상군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고, 그 중간은 멋모르고 지나다니는 누구에게나 위험하다. 기어다니던, 날아다니던 위험도는 공평하다.
 달빛을 감상하면서 센티멘탈해질 여유는 없다.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된 파이터파일럿이라면, 더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주경계를 하게 마련이다. 국지적이었던 구름이 조금씩 걷히고, 지평선의 실루엣까지 약간은 보일 정도다. 습관적으로 다시 레이더경보수신기를 확인하지만 위협적인 신호는 표시되지 않는다.
 아이스맨은 지속적으로 뒤통수가 근질거리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에리어1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조용하다. 이번 공습의 퇴출코스는 [최신]의 정보보고를 바탕으로 계획되긴 했지만 너무 조용한 것도 의심이 되는 법이다. 그렇다고 고도를 올리기도 그렇고, 더 바닥으로 내려가기도 뭐하다. 올렸다가는 구식이지만 대출력 레이더의 사격통제를 받는 85㎜의 KS12, 100㎜구경인 KS19같은 대구경 대공포들이 환영의 불꽃놀이를 해댈거고, 내려갔다가는 야시장비가 완비되지 않은 기체로는 꼴아 박기 딱 좋은 속도다. 하필이면 아이스맨의 위치는 편대의 맨 뒤였다.

 복수의 제트엔진들이 내는 굉음이 주변에 메아리쳤다. 점점이 뿌려진 별들을 배경으로 몇 대의 검은 실루엣들이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뒤의 날렵한 실루엣을 조준경의 가운데에 넣고 트리거를 당긴다.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뒤에서 발생한 뭔가에 고개를 돌린 아이스맨을 엄습한 것은 섬광을 동반한 폭음과 충격이다.

 유도탄이 튜브를 뛰쳐나간 후 비행시간은 3초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엔진노즐에 약간 비껴 맞은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해치운 3대중에서 가장 정석적으로 명중시켰다고 주장할 만하다. 꼬리가 박살나면 대부분의 비행물체는 더 이상 정상적인 비행이 불가능해지는 것이 정해진 수순으로 이제는 잠시 후 추락할 적기의 잔해를 확인해서 [인증샷]을 박아두고, 재수가 좋으면 탈출할 서부연방군 승무원을 포로로 잡아서, 신병을 확보하면 된다.

 등짝을 말발굽에 채인 듯한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는 0.2초가 걸렸다. 생각보다는 빠른 편인데, 그래봐야 평소에는 지상점검 때나 점등여부를 점검하는 붉은색의 경고등과 호박색의 주의표시등이 대량으로 점등돼서 꺼질 기미가 안보일 때는 대략 난감한 편이다. 조종간을 움직일 때의 반응도 비정상적이다. 위력이나 요격범위로 봐서 보병휴대용견착식방공시스템(=MANPAD), 아마 열추적이나 영상추적식 유도탄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탄두로 박살나는 정도라면, 동체와 연결된 피봇(pivot)에서부터 날아간 올플라잉타입(조종면전체가 작동하는 방식)의 좌측 승강타와 찢겨져 나간 방향타, 파편에 의한 피해를 광범위하게 입은 스넥크마 ATAR-09 터보팬엔진의 작동불량은 표준에 가까울 것이다. 피격으로 변형된 기체형상으로 인해 극심한 불규칙적 진동이 발생하면서 계기 판독에 애로를 겪었지만, 더 이상 정상적인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이스맨이 아니라도 판단이 가능하며, 이럴 때의 행동요령은 보통 한가지로 귀결된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I'm hit! Eject!"
 흔들리는 콕핏에서 양손을 다리 사이에 위치한 사출핸들로 가져가는 것은 생각 외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박살난 기체를 살려보려는 행동보다는 훨씬 용이한 일로, 팽이처럼 기체가 회전하고 있지만 않다면, 노란색과 검은색의 줄무늬로 채색된 고리를 잡아당기는 것은 평균적인 성인남성의 완력정도면 충분한 일이다. 물론 목이 꺾이지 않게 등을 꼿꼿이 세워야 하는 것은 사출할 때의 기본자세다.
 설계대로의 시퀜스에 따라 케이블과 기폭약(initiator)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시스템이 먼저 머리 위를 덮고 있던 캐노피를 프레임채로 날려버린 후, 지연회로로 잡혀있던 좌석 뒤의 캐터펄트와 좌석 밑의 로켓모터를 점화, 수십 G의 가속도로 승무원을 의자채로 쏴 올리는 것이 표준적인 제로-제로 타입의 사출좌석 시스템이다. 아이스맨이 이번에 작동시킨 마틴 베이커(리) 제품도 기본에 충실한 작동을 보여주며 좁고 답답한 콕핏(cockpit)에서 허공으로 승무원을 집어던졌다.
 사출시의 급격한 충격으로 아이스맨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지만, 전혀 문제는 없다. 이어진 일련의 순서에 따라, 자동적으로 사출좌석이 알아서 자세를 보정하고, 감속 낙하산을 펴서 수평속도를 줄이고, 멘-시트-세퍼레이션(men-seat-separation) 메카니즘이 좌석과 조종사를 따로 떼어놓고, 주(main)낙하산이 전개되는 과정은 기계적인 문제가 없다면 완전자동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주 드문 확률로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어쩔 수 없다. 사출시스템이라는 것도 사람이 만들고 유지하는 인공물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일에 100%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틴 빵집의 [제빵사]들이 실수를 하지 않은 것 같다.

 “대장, 이것 좀 들어보삼.”
 중무장된 랜드로버의 뒤에서 헤드셋이 조수석으로 넘어갔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머리를 휘감은 두건의 틈새로 헤드셋을 밀어 넣으면서 북쪽을 가리켰다.
 “…투, 다운. 사출까지는 들었으나 생존은 불명.“
 “쿠궁~.”
 동시에 둔한 폭발음이 밤공기를 타고 퍼졌다. 아까 북북동 방향에서 번쩍인 섬광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에는 사운드톤이 낮은 것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30초쯤 전에 북쪽 지평선에서 발생한 섬광이 근원일 것이다.
 “움직일 지도 모르니끼니, 준비하라우.”
 다시 헤드셋을 뒤로 넘기면서 주변을 환기시켰다.

 사전에 설정된 시퀜스에 따라 파라슈트가 전개되면서 자유 낙하하던 파일럿을 잡아채는 충격으로 아이스맨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반사적으로 머리 위를 확인하니, 원모양으로 별빛이 가려진 것을 보아 캐노피의 전개는 정상적인 듯하다. 이제 문제는 착지다. 최고의 기상상태와 시간대를 노려서 실시하는 정상적인 패러드롭일 경우에도 인명사상의 위험은 언제나 상존하는 판에,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DZ(Drop Zone), 불확실한 기상상태, 거의 무월광에 가까운 저조명상태에서의 패러드롭은 거의 목숨을 내놓고 하는 짓이나 다름 아니다. 거기다가 사출좌석에 비치된 파라슈트는 일반적인 공수부대용 낙하산보다 훨씬 빨리 떨어진다.
 “우갹!?”
 훈련받은 대로 발은 모으고, 허리부터 발목까지는 힘을 뺐지만 역시, 무계획적인 스카이다이빙의 충격은 적지 않다. 접지와 동시에 옆으로 몸을 굴려서 완충을 시키는 와중에 땅바닥에 깔린 돌멩이에 찍히고, 허벅지에 매달고 있던 파우치에 배기고 난리도 아니다.
 “우그~.”
 어느 동네 붕어빵 절도범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아이스맨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친 데는 없는지부터 확인해본다. 세상 모든 스카이다이버들의 인사말중 하나가 “낙하하다 부러졌나?”로 시작해서 “아니, 착지하다가 부러졌지.”로 끝나는 것처럼 거의 모든 낙하산에 관련된 사상의 대다수는 착지하면서 발생한다. 다친 부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낙하산부터 접기 시작한다. 텐트겸용으로도 쓸 수 있는 국방색부분이 다른 흰색과 오렌지색을 다 덮도록 캐노피를 접어서 뭉쳐놓고, 나머지 장구를 벗기 시작했다.

 “…라져, 현시간부로 수색에 임하겠음, 이상.”
 송수화기를 다시 무전병에게 넘긴 소위가 경계 중이던 상병을 불렀다.
 “예, 소위님. 뭐랍니까?”
 접적지역 내에서 매복중인 정찰분대를 무전으로 호출할 정도의 일은 많지 않다. 아까 격추된 기체의 건일 것이다.
 “자네 예측대로 일걸. 추락한 잔해 및 승무원의 수색이다. 추락지점이 한 5㎞쯤 남쪽이었지?”
 “그쯤입니다. 조종사가 탈출을 했다면 그보다는 동쪽에 있겠죠. 움직인다면 서쪽으로 갈 겁니다.”
 “좋아, 먼저 잔해부터 확인하고 조종사를 수색하자. 분대 이동준비해.”
 “전파감청을 해서 위치를 잡아주면 좋을 텐데요.”
 “말단 사단예하 정찰분대에 그런 정도까지 해주겠나? 궁시렁대지 말고 움직여, 상병.”
 “예이예이.”

 파라슈트의 라이저는 하네스의 어깨부분에 걸리게 된다. 락(lock)을 제끼면서 레버를 내리면 튕겨서 나오는 방식으로 안 나온다 싶으면 털어주면 쉽게 빠져나온다. 역시 원터치타입 버클로 매달린 산소마스크를 풀고, 꽉 죄어놓은 헬멧 턱끈을 푼다. 야전의 보병들은 총탄이 빗맞았을 때 목이 돌아가지 않게 한다는 이유로 턱끈을 풀고 다니는 패션을 선호하기도 하는데, 조종헬멧은 그랬다가는 대략 좋지 않다. 만에 하나 비상탈출시 풍압으로 홀라당 날아가버릴 공산이 크며, 답답하다고 턱끈을 느슨하게 맸다간 벗겨지다만 헬멧 턱끈이 목을 졸라서 골로 가는 경우도 발생하는 것이다. 헬멧을 벗으면서 같이 벗겨진 스컬캡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사타구니로 통과해 나와 허리에서 걸린 버클을 포함 3개의 버클을 풀어서 토서(torso) 하네스를, 뭉쳐놓은 낙하산 위에 올려놓는다. 두툼한 스트랩과 견고한 합금제 버클로 조립해 놓은 하네스야 말로 항공장구 중에서는 낙하산을 제외하고 가장 무거운 구성품이며, 아이스맨의 경우에는 여기에 특별 제작된 웨폰캐리어까지 연결해서 다니느라 더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하다.
 “아, 서바이벌키트는 날아갔나 보네. 젠장.”
 보통 토서 하네스의 엉덩이 쪽에는 사출좌석의 바닥쿠션을 겸하는 서바이벌키트의 케이스가 연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사출시의 충격으로 분리돼서 날아가 버린 듯하다. 따라서 남은 생존 장비는 베스트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약간의 물품이 전부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무전기는 베스트와 서바이벌키트에 두 개를 준비해서 다니니까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서바이벌키트는 비교적 장기간의 생존을 위한 소모품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서, 구출되든 포로가 되든 단시간에 끝날 소지가 높은 현재 상황에서는 중요도가 낮긴 하다.

 “…퍼스트 씩스, 아이스맨.”
 “씩스, go ahead."
 “…착지 완료, 서쪽으로 이동하겠음. 이상.”
 “씩스, 라져 아웃.”
 개인용의 비상무전기인지라 저출력으로 인해 감은 멀지만, 사전에 약정된 교신시의 규칙에 의하면 아이스맨은 착지하면서 부상을 당하지도 않고, 아직은 포로가 되지도 않은 것 같다. 상투적인 수법중 하나가 비상채널로 호출해서 구출팀을 킬존으로 끌어들이는 것인데, [착지]라는 한마디로 그것은 가능성이 낮아졌다. 부상을 당해서 이동이 불가능하거나, 머리에 총구가 들이밀어진 상태였다면 [낙하]라고 했을 것이다. 다음은 구출팀을 부르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며 괜히 주변을 돌면서 얼쩡댈 이유는 없다. 어차피 연료도 기지까지 가서 세 번 정도 어프로치롤을 돌 정도뿐이다.
 샤크가 다시 통신패널을 조작했다.
 “폭스 컨트롤, 여긴 퍼스트 6, 02의 생존확인, 회수를 요청함, 좌표는…479, 284.”
 “컨트롤 카피.”

 “…라져, 좌표확인, 479, 284, 카피, 아웃.”
 “살아는 있대나?”
 “그렇다삼. 최종좌표는 여기.”
 잠시 후 랜드로버 2대와 ATV 2대로 이루어진 차량대열이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피아가 뒤섞인 회색지대에서 기동하는 모든 차량들이 그렇듯이 모든 탑승원들은 각자에게 배정된 화기들을 주변으로 돌리면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동무들, 걸판지게 한탕 갈길 생각하기요.”
 팀을 지휘하는 고참대위의 코멘트는 위와 같다.

 허벅지에 매놓았던 니보드(knee board)는 흔적도 없이 허공으로 날아갔지만, 서바이벌베스트의 허리부분과 양허벅지에 버클로 잠궈 놓은 하드타입의 피스톨 홀스터와 탄입대는 무사하다. 이 버클과 베스트의 패스너를 잠깐 풀어서 공간을 만들고, 아랫배와 다리를 죄는 G슈트를 벗어제꼈다. 공조 시스템에서 압축공기를 공급받아 급기동시에 하체로 피가 몰리는 현상을 억제하는 G슈트야 말로 제트시대의 전투조종사들에게 필수적인 장구지만, 이렇게 땅에 떨어져 터덜터덜 걸어야할 아이스맨에게는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장구도 없다. 발목에서 사타구니까지 오는 지퍼를 미련 없이 풀고, 옆구리 지퍼도 과격하게 내리며, 세탁기에서 꺼낸 청바지 털듯이 집어 던진다.
 하네스와 분리한 웨폰캐리어에는 말그대로 무기가 들어있는데, 이게 또 엽기적인 물건이 되어놓았다. 피스톨보다는 클 것이 예상되긴 했지만, 보통의 콜트제보다 빡빡한 핀 두 개를 꽂아서 조립한 완성품은 14.5인치 총신의 M4계열 택티컬 카빈, 그것도 펜타곤 납품가보다 거의 두배 이상 비싸다는 KAC SR16이다. 아직은 안전한 상태였지만, 왼쪽 허벅지의 파우치에서 5.56㎜ 탄약 28발이 장전된 탄창을 꺼내 카빈에 꽂고 장전손잡이를 당겼다 놓은 순간, 이것은 고성능의 살상병기로 변신한다. 같은 이치로 우측 허벅지의 홀스터에 꽂힌 체코제 권총도, 이것을 꺼내 슬라이드를 잡아당겼다 놓으면 장전된 9㎜ 루거탄 15발이 바닥날 때까지 흉기로 변하는 것이다.
 “생존은 했고, 다음 단계는 도피…. 으그, 조낸 걸어야 되는 건가?”
 표준적인 생존교범대로였으면 서바이벌키트에 동봉된 국방색 반다너가 묶여있어야 할 머리에 검정색의 유러피안 베레모를 얹은 아이스맨이 언제나 그렇듯이 불평을 내뱉지만 적지 한가운데 뚝 떨어져 고립된 상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님.”
 “뭔가 상병?”
 “이거 맛있을까요?”
 박살난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나온 내용물들이 흩어진 가운데, 분대선임인 상병은 칼로리메이트 비스무레하게 생긴 생존식량 덩어리를 들고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봤다.
 “고칼로리인 것만은 확실해, 하지만 맛은 절대 장담 못하지. 뭐하면 먹어보든가.”
 그리고 한입 베어 물은 상병의 표정이 “이게 아닌데.”로 변하는 것을 본 소위가 마무리를 짓는다.
 “그만 가자고, 어서 그 호로자식을 잡아다가 그 맛대가리라고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칼로리덩어리를 아가리에 처박아주면 되는 거지.”
 수색대는 다시 채비를 갖춰 이동하기 시작한다.

 달빛을 벗삼아 황무지를 정처 없이 걷던 그림자가 잠시 멈춘다. 멈춘 이유는 상체에 둘러맨 조끼 주머니에서 직육면체의 무엇을 꺼내기 위함이었던 듯하다. 가슴 앞에 늘어뜨린 스토너 라이플을 왼쪽 겨드랑이 아래로 밀어넣고, 직육면체의 한면에 비닐포장되어 동봉된 빨대를 뜯는 걸로 보아, 직육면체의 무엇은 아마도 음료종류의 팩인 것이 확실한 것 같다. 빨대를 포장했던 비닐은 잘 수거해서 주머니에 다시 넣고, 팩에 빨대를 꽂았다. 잊기 쉽지만 현재 아이스맨은 적지 한가운데 고립된 추락조종사인 것이다. 적의 추격에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최소로 줄여야 하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장거리를 이동하면서 칼로리를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라 서바이벌베스트에 넣고 다니던 비상용 음료를 뜯어서 빨아먹으려 하는데,
 “쭙…꿀꺽, 웩! 뭐야 이거?!”
 어둠에 가려서 팩포장의 색이나 쓰여 있는 상품명따위는 보이지 않지만 기지에서 분명히 취급하고 있는 물품중 하나이며 아이스맨 자신도 알고 있는 맛이다. 물론 평소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 부류의 것인데, 왜 자신의 서바이벌베스트에 포함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치익…아이스맨, 여긴 써드 원.”
 마침 절묘한 타이밍으로 무전기가 울렸다. 추락 및 탈출 후 이미 두시간 반이 지났으며, 야간 비상대기중이다가 RESCAP(구조-공중초계)으로 이륙했을 제3중대장 듀크의 호출이다.
 “아이스맨, go ahead."
 왼손에는 아직 음료팩을 들고, 남는 오른손으로 무전기를 조작하면서, 아이스맨은 계속 서쪽으로 이동했다.
 “[착지]한 다음에 변경된 사항이 있는가?”
 “[착지]한 이후에는 변경된 사항 없슴. 그런데…누가 내 베스트의 오렌지쥬스를 [진한 복숭아맛]쥬스로 바꿔놨던데?”
 “풉…. 아, 그거 누군가가 단 음식이 고칼로리를 발휘한다고 하길래 바꾼 것 같은데.”
 “아? 혹시 당신이야? 아무리 단맛이라고 해도 복숭아과즙 500%는 상식을 벗어나는 거라고.”
 “난 아니야, [누군가]겠지. 그건 그렇고 비컨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거겠지?”
 “아?! 말돌리고 있어? 듀크, 이번의 진한 복숭아맛 쥬스는 그래도 먹을 만할지도 모르겠는데,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샤크 아저씨의 베스트에 CHARMS를 넣지는 말아줘. 당장에 패리스 섬의 하트만 중사로 변신할 거야. 여담이지만 현재 좌표는 460에 283, 비컨 좌표도 그런지 확인 좀 해줘.”
 “라져, 샤크 아저씨 말마따나 갓뎀 뻐킹 참스는 열외로 하지. 그리고 좌표도 잘 맞는 것 같군. 그럼 나중에 BX(기지매점)에서 보자고. 아웃.”
 “아이스맨, 아웃.”

 포인트맨이 왼손을 들었다. 분대는 조건반사적으로 제자리에 멈추고 자세를 낮춰서 자신들이 제대로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느슨한 2열 종대의 좌측열 3번째에 있던 소위와 우측열 5번째를 차지하고 있던 상병이 주변을 살피면서 포인트맨에게 접근한다. 이들이 덤불에 숨겨져 있던 항공장구들을 발견한 것은 거진 3시간 전이며, 이제는 동녘하늘이 약간씩 밝아지고 있는 중으로, 포인트맨이 가리킨 약간 깊이 들어간 부츠 자국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어.”
 “예, 하지만 쫓기가 쉽지는 않군요.”
 상병이 동의했듯이 이 조종사는 제대로 된 탈출훈련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 훈련된 정예 보병에 맞먹는 이동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이동해야할 방향이 제한되지 않았으면 도보로 추적이 가능했을지나 의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추적은 가능했으며, 이제 조금만 따라가면 지치고 허기진 조종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보통의 전투조종사들과는 다르게, 서유럽 모국 내무부 국경경비대의 어느 부대명칭을 상품명으로 하는 모국 브랜드의 특징적인 부츠를 신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아마 반경 10마일 이내에서 이 부츠를 신고 있는 자는 지금 추적중인 파일럿이 유일할 것이다. 참고로 세 개의 산등성이를 중첩시킨 마킹의 저 브랜드는 주로 스포츠용품으로 [매우] 유명하다고 한다.

 두툼한 울로 만든 검은 색 베레모는 밤이니까 쓰고 다녔지, 이제 슬슬 해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는 별로 좋은 패션이 아니다. 기온이 뚝 떨어지기로 유명한 황무지의 밤이라고 해도 아이스맨 정도로 적지를 행군하게 되면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리는 것은 당연한 법이다. 진한 복숭아맛 쥬스를 마셔서 그런지 목도 탔지만 아직은 견딜만하다. 베레모를 벗어서 베스트에 대충 꾸겨넣고, 상큼한 레몬 옐로우 컬러의 스카프로 이마와 목의 땀을 닦으면서 뒤를 돌아봤을 때 [그들]을 발견했다.

 처음 발견한 것은 상병이었다.
 “소위님!”
 “나도 봤어, 분대 산개!”
 보통 전투조종사라는 부류들은 끽해야 25m정도의 유효사거리를 가지는 권총을 한 자루 소지하는 것이 보통이며, 25m라는 사정거리도 총자체의 성능에 기반한 것이지, 일반적인 전투조종사들의 사격실력은 돌격소총과 기본적인 헬멧등으로 무장한 보병들과 맞짱을 뜰 정도는 절대 아니다. 1대1로 붙어도 저쪽의 승산은 매우 희박하지만, 소위의 분대는 12명의 머릿수와, 그 분대를 지원하는 경기관총 및 유탄발사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전력이라면 재수 좋으면 총한발 쏘지 않고도 고급자산인 전투조종사라는 종자를 생포하는 것이 가능하며, 보통은 그렇다.
 거기까지 계산한 소위는 분대에 유일한 무전병을 불러서 상급부대와 연락한다는 옵션은 우선순위에서 저 밑으로 내려놓고 행동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화력은 앞서지만, 그에 비례해서 장비무게도 무겁기 때문에 뒤를 쫓게 되면 힘이 들것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먼저 잡고 무전을 치겠다는 심산이었는데….

 다행히 아이스맨의 위치는 동쪽에서 산개하는 추격대를 내려다보는 위치였다. 그리고 몸을 숨길 능선너머로 마침 넘어가는 중이었으며, 저들과는 250m이상 떨어져 있었다. 일단 능선 반대편으로 넘어가 바위그늘에 숨어서 오리지날 유진 스토너 선생의 설계에 기초한 [비싼] 라이플의 총구만 내놓고 능선 아래를 겨누면서 왼손으로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무전기를 꺼냈다.
 “여긴 아이스맨, 아무나 좀 받아주셈.”
 “아이스맨, 여긴 루시퍼 41, go ahead."
 “ETA?"
 “좌표가 베이커, 제브라, 446에 282가 맞으면 30분.”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되는 건 나만의 착각인가, 루시퍼?”
 “어쩔 수 없네, 아이스맨. 이제야 공역이 확보돼서 이륙했는걸.”
 “거 너무하네, 그래 난 배추할게 제엔장.”
 “….”
 순간적으로 무전망에 침묵이 깔린다.
 “…내가 했지만 좀 아니군. 하여간에 대충 300m밖에 자동화기로 완전무장한 보병이 한분대정도, 일단은 교전을 하던지 뭘하던지 개겨보겠츰, 이상.”
 “…루시퍼 41, 라져.”
 어느새 거리는 250m안쪽으로 좁혀졌다. 이 정도라면 시력에 따라서 상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다. 물론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면 대충 들고 있는 것들이 어떤 종류의 연장들인지 식별이 된다는 것도 당연하다.
 일반적인 2열 행군종대에서 접적시에 유용한 쐐기대형으로 전환하는 것을 보아하니 훈련이 안된 오합지졸은 아니지만, 인공물이 없는 야지에서 은폐-엄폐도 하지 않고 그냥 전진하는 것을 보면, 이쪽을 기본적인 권총 한정만을 소지한 표준적으로 추락한 전투조종사중 하나로 간주하는 것이 분명하다. 아마 자신들과 비슷한 규모의 정규보병을 상대로 할 경우에는 벌써부터 엄호와 약진을 반복하면서, 분대장의 역량에 따라서는 우회기동하는 사격조를 차출했을 것이다.
 “오른쪽에서 3번째, RT(무전병)는 저놈인가?”
 EOTECH제 홀로그래픽 웨펀 사이트의 붉은 광점을 등짐이 특출나게 큼직한 우측에서 세 번째 소총수에게 올려놓는다. 오른손 엄지가 리시버 왼편의 조정간을 [AUTO]로 180°돌리는 동안 조준은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처음 설계됐던 50년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인체공학적 배치의 덕이다.
 “니놈들은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해.”
 방아쇠를 당기면서 아이스맨이 뇌까렸다.

 “따다당!”
 나토표준 5.56㎜ SS109탄약의 4g 탄자는 14.5인치 총열에서 800㎧는 확실히 넘고 900㎧는 좀 안 되는 총구속도를 발휘한다. 보통 음속을 340㎧로 계산하는 경향에 비춰볼 때 상급부대와 연결이 가능한 무전기를 소지 및 사용할 수 있는 무전병이 피격당한 후 총성을 청취하게 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교전거리가 200m를 넘었을 경우는 더하다.
 짧게 끊어진 3발은 분대의 정면에서부터 날아왔고,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황무지에서 장거리를 도보로 순찰하는 특성상 중앙군 사단 정찰대는 개인 방탄장구의 규정이 느슨한 경우가 일반적이며, 분대원 12명중 방탄헬멧과 플레이트 삽입형 보디아머를 완전 착용한 대원은 단 한 명뿐이며, 첫 번째 표적으로 전락한 무전병은 방탄기능이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든 체스트리그와 정글모뿐이었다.
 당장 옆에 있던 소총수 한명이 무전병에게 달려갔지만, 이어진 8발의 소총사격에 그도 절명하고, 무전기는 수리가 불가능할 지경으로 완파되고 말았다. 실질적으로 분대를 지휘하고 있던 상병이 자신들이 처한 전술적 상황을 깨달은 시점은 이 때였다.
 “분대, 흩어져! 소위님, 숨으세요!”
 물론, 이들도 오브젝트인 적대적인 조종사와 농담이나 따먹다가 생포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분명히 표적도 보유한 화력으로 저항을 할 것이지만, 300m에 가까운 거리에서 초탄부터 명중탄을 낼 것이라고는 가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간신히 몸을 가릴 수 있는 크기의 화강암 뒤에 엄폐한 뒤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자신들의 지형적 위치는 심대하게 불리하다. 분대가 지나온 동쪽을 제외한 3면이 하늘로 솟아오른 언덕으로, 정면인 서쪽으로 좁은 통로가 있긴 하지만 100m앞에서 북쪽으로 꺾여서, 정면도 야트막한 언덕으로 막혀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가장 허접한 육군의 뭐같은 보병학교를 중퇴한 최악의 고문관이라도 당장에 매복포인트로 잡기에 딱인 그런 지형인 것이다. 이런 지형에 행군종대로 어슬렁어슬렁 기어들어간다는 것은 매저키스트 변태나 하는 짓이다. 그런데도 킬존에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간 결과는?

 “원칙을 무시한 바보들에겐 죽음이 기다릴 뿐.”
 아이스맨이야말로 소수로 다수를 상대하는 상황에서의 원칙을 잊었다간 당장에 아이짱이 노를 잡은 나룻배의 승객이 될 판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소수로 다수를 상대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미 물건너 갔으니 패쓰하고 플랜B를 적용해야 한다.
 개인간이든, 군단급이든 교전시에 가장 중요한 점은 주도권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주도권은 화력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 보통이며, 화력은 일반적으로 사수의 숫자와 정비례하곤 한다. 물론 일반적인 상황에서나 그러하며, 아이스맨과 중앙군 정찰분대간의 교전에서는 지형과 초기 배치라는 요소가 양측의 화력불균형을 대폭적으로 경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덜렁 단축형 돌격소총 한자루로 경기관총 및 유탄발사기로 완편된 보병 분대를 얼려버렸으니.
 화력을 늘리는 또 하나의 수단은 사수의 숫자와 위치를 기만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초 위치에서 11발을 사격, 두 명을 넘어뜨린 아이스맨이 능선을 타고, 관측되지 않은 채로 북쪽으로 30여 미터를 기동하는 동안, 머즐 블래스트에 날린 흙먼지로 위치를 특정지은 중앙군 보병분대의 경기관총이 아이스맨의 최초 위치 부근에 제압사격을 가한 것처럼 말이다.
 
 보통 소총수들과 같은 구경의 탄약을 사용하는 분대지원화기는 분대화력의 중핵을 이루며, 능선 아래에서 두드려 맞고 있는 12사단 소속 보병정찰분대의 이스라엘제 네게브 LMG 사수가 확인된 파일럿의 위치를 향해서 제압사격을 시작하자, 그에 따라 대다수의 소총수들이 그 주변에 갈릴 라이플로 탄약의 비를 뿌린 것은 훈련된 보병들이 취할 수 있는 교과서적인 대응이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점은 최초의 피격으로 두 명의 전우를 잃은데 굴하지 않고 불리한 지형아래서 즉각적인 대응사격을 가했다는 점이다. 편제상의 지휘관인 소위가 제대로 지휘를 하지 못하자, 실질적인 분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상병을 비롯한 소총수들이 전방을 향해 6초 남짓한 자동사격의 포화를 퍼붓고 재장전을 실시할 때까지만 해도 전투의 주도권은 다시 정찰분대로 넘어온 것처럼 보였다.
 네게브도 그렇고 갈릴도 그렇고 발사속도도 빠른데다가 총성도 작은 것이 아니라 각자 30여발씩을 완전자동으로 퍼부은 보병들은 정상적인 청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약간 멍하면서도 흥분한 상태에서 이들은 엄폐했던 지형지물의 뒤에서 약간씩 움직이려고 시도했으나…분대지원화기(이하 SAW) 사수의 엄폐물에서 피어오른 흙먼지와 반박자 느리게 달려온 자동화기의 발사음에 다시 얼어붙는다. 아니 얼어붙은 것으로 끝났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 SAW 사수 쪽으로 탄착이 모이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분대에 단 한정 편제된 유탄발사기(이하 GR) 사수를 향해서 십수발의 총격이 이어져, “…?!” 목표가 된 GR 사수는 비명도 못 지르고 때려 넘어가고 만다.

 “칫, 보낼 수 있었는데.”
 SAW는 덩치에 비해 동작이 날래서 금세 엄폐물 뒤로 숨은데 비해, 두 번째 타겟으로 노려, 명중탄을 낸 GR은 확실히 가지 않고, [굴러 이동]을 시전, 피를 흘리며 엄폐를 완료한 것이다. 대신 앞으로 아이스맨을 향해 총질을 할 가능성은 매우 적어졌다. 삽탄된 탄창에 남아있던 17발과 바꾼 결과치고는 나쁘진 않다.
 스토너 시리즈의 인체공학적 설계는 탄창멈치의 위치에서도 빛을 발한다. 8호 사이즈의 FRP-2 글러브나 스몰사이즈의 낙타등 택티컬 글러브를 사용하는 아이스맨도 피스톨 그립을 파지한 채 검지나 중지만 뻗으면 바로 탄창멈치가 걸려든다. 고정되는 부위가 보통 두 군데인 다른 종류의 소총들과는 다르게 멈치만 누르면 밑으로 스르륵 빠지는 것도 AR15 계열의 조작상 편리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른손이 그립을 파지한 상태에서, 왼손이 허벅지 파우치에서 낙하산코드로 고리를 묶은 경합금제 매거진을 꺼내 삽탄하는데 걸린 시간은 2초 정도였다. 삽탄을 완료한 왼손이 리시버 왼편의 노리쇠 멈치를 쳐서 노리쇠를 전진, 초탄을 약실에 밀어 넣는데 까지 1.5초를 추가하자.

 “일병!”
 “…끄으윽, 제엔장!”
 소총수중 한명이 유탄수에게 달려가는 동안 사격은 가해지지 않았다. 아마도 재수 좋게 재장전 타이밍이었나 보다. 잠시 후,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상병은 다시 능선 위와 소위를 번갈아 바라봤다. 소위가 체스트 리그에서 연막탄을 꺼내고는 능선 위를 가리켰지만,
 “…(절레절레).”
 바람 방향이 안 좋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이라 앞에다가 연막탄을 던져봤자, 다시 연막이 밀려 내려올 것이 분명하다. 연막에 숨어서 돌격을 해볼 심산이었나 본데 이래서는 연막을 뚫고 나오는 순간 자동화 사격장의 표적처럼 쓰러질 판이다. 동남풍이라도 불어주지 않으면 연막차장이라는 옵션을 쓸 수 없는데 여기엔 제갈공명도 없다.
 상병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정규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순전히 경험치만으로 올린 레벨만으로는 상황을 타개하기가 만만치 않으며, 이러할 때 정규군사교육을 통해 타개책을 찾아야 할 인물은 소위여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재장전과 병행해서 엄폐위치를 변경하는 것이 아이스맨으로서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큼지막한 바위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능선 아래를 살피자, 차폐물 뒤에 숨은 정찰대들이 뭔가 수신호를 교환하면서 이렇고 저렇고 그렇고 요렇게 대응전술을 짜는 것이 보인다.
 “루시퍼 41, come in."
 "루시퍼 41.“
 “현재 다수의 적과 교전 중, ETA?”
 “20분, 가능한 버텨보기 바람.”
 “…5분이나 버티면 다행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이런 사발?!”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온 정찰대의 숫자가 족히 다섯, 불쑥 총구를 꺼낸 SAW의 앞에서 먼지가 피어오르면서 주변에 5.56㎜탄두가 난무한다.
 “그래, 이렇게 나와줘야지. 후딱 쓸어버리고 들어가서 야동봐야 한단 말이야!”
 뭔가 핀트가 어긋난 듯하지만, 교전은 계속된다. SAW를 포함한 3명의 사수가 화력으로 엄호하는 가운데 나머지 다섯이 차폐물로 약진하는 전형적인 분대전투의 기본기를 시전했다.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전술로 당하는 쪽은 뻔히 알면서도 이를 깨기는 쉽지 않다. 물론 파해가 없는 것은 아니며, 보통 두가지 방법이 사용된다.
 첫 번째로, 공격측을 압도하는 화력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가장 간단하지만, 간당간당한 탄약을 보유한 카빈 한자루는 이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넘어가기로 하자.
 다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지만, 의외로 힘든 방법인 기만이다. 약진과 엄호라는 것은 한쪽 방향으로 고착이 될 수밖에 없는 전술인데, 그 목적지가 텅 비어있다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방법이긴 한데, 여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결과가 안 좋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스맨의 재수가 좋았는지, 중앙군 보병대의 재수가 나빴는지, 공격축선은 살짝 빗나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타당, 타당, 타다당!”
 2시방향에서 날아든 단속적인 사격음과 함께 선두를 달리던 소총수가 더블 래리어트에 걸린 것처럼 튕겨 넘어져, 10여미터를 그대로 굴러 내려와 뻗어버리고 만다. 
 “우아앗?!”
 말그대로 식겁한 소위가 피격당한 소총수를 붙잡고 차폐물로 끌고 들어가서 맥박을 확인해 보지만 이미 또 한명이 KIA가 됐을 뿐이다. 이어진 4발정도의 소총사격과, 잠시 짬을 두고 날아든 약간 둔탁한 총성의 반자동 속사 사격에 돌격은 다시 돈좌되고 말았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여기서 돌격조가 축선만 바꿔서 밀고 들어갔으면 아이스맨의 목숨은 아무도 보장 못 했을 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엄폐!”
 하지만 소위는 엄폐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결과는 아무도 돌이키지 못하게 된다. 노보로시스크에서 4년전에 생산된 152그레인짜리 7.62㎜ 철갑관통탄두가 소위의 후두부를 관통, 소뇌 및 기타 장기들을 파괴하며 생명활동을 정지시키게 됨으로서 말이다.

 “와우, 나이스 샷!”
 “노가리깔 시간 있으면 기관총부터 잡으라우!”
 이어지는 독일제 오리지날 G3 라이플 세정의 속사가 집중되면서 지금까지 대활약하던 SAW가 침묵한 것을 시작으로, 역시 7.62×51 탄약을 금속제 탄띠로 걸어맨 라인메탈사(社)제 기관총 2정이 능선에 걸쳐있던 정찰분대를 말그대로 쓸어버리고 만다.

 탄이 걸려버린 카빈을 제쳐두고 CZ피스톨로 견제사격을 가하면서 시간을 벌려던 상황이, 제3의 세력이 난입하면서 해결되는 꼴을 보면서 간신히 살아날 기회가 생겨난 아이스맨이다.
 “찌그러졌나?”
 삽탄돼있던 탄창을 빼서 유심히 살펴보고는, 허벅지의 새로운 탄창을 꺼내 아말라이트에 삽탄, 걸린 탄창은 베스트의 빈주머니에 꾸겨 넣는다.
 능선아래에서는 후반에 난입한 연방군 특수부대인 장거리정찰대에 의해 전장정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중에 리더로 보이는 저격수가 왼팔을 휘둘러 아이스맨을 부른다. 뒤로는 어느새 나타났는지 랜드로버와 4륜 오토바이가 두대씩 굴러와서 주변을 경계하고 섰다.
 
 시커먼 비행복과 올리브드랍 베스트의 앞에 시커먼 M4 카빈을 대각선으로 비끄러매고, 피스톨의 탄창을 바꾸면서 능선을 내려오는 아측 조종사의 모습은 여러모로 상식을 벗어난 모습이긴 하다. 가장 정상적인 패션이 검은 선글라스라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물론 아랍식 두건과 고글로 동여맨 이쪽의 패션도 만만치 않기는 하다만.
 “고생했시다. 헬기가 오기는 하나?”
 팀장인 대위의 말에 답하듯이 4엽 로터가 내는 파열음이 주변에 메아리치기 시작한다.
 “치익, 여긴 루시퍼41, 아이스맨 come in?"
 "Go ahead, 루시퍼.“
 “우리가 늦은 건 아니겠지?”
 “늦을뻔 했네, 루시퍼.”
 랜드로버에서 붉은색 신호탄 두발이 하늘로 솟았다.
 “오케이, 플레어 확인, 착륙하겠다.”
 고개를 돌린 아이스맨이 대위에게 의문이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우린 무전송신을 거의 안 한다우. 대신 날짜에 맞춰서 신호탄이나 연막탄을 쓰지.”

 절차에 따라 아이스맨이 무장을 해제하고 헬기에 탑승하자, 구조사가 헤드셋을 건넸다.
 “고생했네, 아이스맨.”
 “밑의 친구들은 누구야?”
 “랏트, LRRT."
 "저치들이?“
 “그렇다네.”
 이미 랏트팀은 차에 올라 패트롤 구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생존, 도피, 저항, 탈출…. 아주 풀코스를 했군.”
 “뭐라고 했나?”
 “아냐, 빙수 한그릇 해야겠다고.”
 슈퍼퓨마는 항로를 245로 잡았다.

 

by 아이스맨 | 2009/06/07 19:55 | 창고관리반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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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길가다가 at 2009/06/15 11:26
알파 스트라이크 리메이크인겁니까??
Commented by THlove21 at 2009/06/18 06:46
오... 리뉴얼 버전인가? 알파스트라이크 팬이에요!!!
Commented by 네비아찌 at 2009/06/29 14:19
오오 알파 스트라이크!!! 그런데 제가 기억하는 내용과 좀 차이가 있는게 역시 리메이크인가봅니다. 원래 저 랏트팀 지휘관(구 북한군 출신이었지요?)이랑 몇마디 나누고 헬기 탔던 걸로 기억나는데~~~
아무튼 정말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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