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 나머지는 행정계원에게 물어보고, 난 기체 도장 점검하러 갈테니까 알아서들 쉬어. 뭐, 최소 한주정도는 출격할 일이 없을테니까.”
그리고선 2중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온 행정계원(상병계급장을 달고 있는 정규군)과 교대해서, 말그대로 중대원들을 냅두고 나가버렸다.
“What the?”
데꿀멍해버린 슬러거의 한마디 논평이다.
“여기에 우리보다는 오래 있었다. 전형적인 고참병의 모습이라고 봐야겠지. 이중에 실전뛰어본 경험있나?”
그래도 분위기를 수습해보려는 이반의 노력이 엿보인다.
“5년됐어, 발칸반도에서.”
“Me too.”
역시 범지구권타격을 지향하는 주식회사 미국공군과, 안 끼는데 없는 RAF다.
“전술교도대.”
아직도 분위기파악을 못하는 화격단 소위의 개드립에 이어,
“ACMI POD와 PBX탄두는 아예 틀리다는 거 알고 있지? 거기다가 중대장은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잡는 기술을 알고 있고, 실행해본 녀석이야. 내 느낌이 맞다면 말이지만.”
하는 일 없이 삘타령하는 것은 금발버젼의 알랭 드롱을 연상시키는 장 클로드 중사인데, 자신은 몰랐지만 의외로 중대장의 정체에 근접한 편이다.
“일단 보기에는 몽골로이드로군. 그렇다는 소리는 코카소이드인 나보다는 같은 몽골로이드인 자네가 좀더 구분이 쉽다는 소리겠지?”
호주 사투리가 약간 섞인 브리티쉬 영어(?)를 구사하는 비스트가 가이를 지목한다.
“일단 동남아계는 아니고, 동북아쪽에 가깝다고 봐야될 거야. 추가로 스타일이나 행동거지는 절대 일본인은 아니야. 양아치 따위의 막가는 성향과는 틀려.”
그래도 인종적으로 가장 비슷하다는 가이가 먼저 경우의 수를 몇가지 줄여주기는 했다. 그래봐야 소수일 뿐이지만….
“그건 그렇고 말이야, 저기 들어온 행정계원에게 물어볼 것들이 있지 않겠나, 친구들?”
삼천포로 빠지는 대화를 업무관련 회의로 전환하는 역할은 어쩔 수 없이 중대선임을 떠맡게된 이반의 몫이 돼버린 듯하다. 갈색머리의 적지 않게 어려보이는 기술상병-SPC-이 회의용 탁자에 가까이 배치된 책상에 올라가 있던 PC에서 키보드를 치우고, [MY]키보드를 연결하고 있었다. 오른쪽 가슴의 명찰에 적힌 이름은 [J. LYNN].
“상병이면 상병이지, 기술상병이라는 건 또 뭐라는 거에요?”
M군의 의문은 군대와 인연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놓을 질문에 해당한다.
“WDF의 계급체계는 미군식에 가까워. 특히나 사관급으로 가면 똑같은 거나 마찬가지지. 그중에 이등병, 일등병, 상등병, 병장으로 올라가는 계급 중에서 중간에 상병이라는게 있지?”
“그렇죠.”
“직종에 따라 스페셜리스트와 코포럴로 나눠지는 거야. 전투직종이면 코포럴, 비전투병과면 스페셜리스트, 약어로 SPC, 코포럴은 CPL로 보통 쓰게 되지. 가장 틀린걸 따져보면 SPC는 분대장 보직을 맡을 수 없어. 일단 규정상으로는.”
M군의 표정은 이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눈은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 과감하게 넘어가도 괜찮다.
일단 부대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항목들을 대부분 확인했을 즈음, 슬러거가 제대로 미국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이보게 린상병, 우린 전투조종사로 계약했는데, 호신용 권총 한자루 정도는 줘야 되는거 아닌가?”
“지금 말씀드리려는게 그겁니다. 보직상 1인당 권총 1정을 지급하게 돼있고, 장비기준은 카테고리 B에 속합니다. 하지만 지급품을 수령하지 않고 개인물품을 써도 무방합니다. 이 경우에는 장비관리, 수리 등에서 개인비용이 들어가게 되고요. 저기 있는 카빈들-문옆 총가틀의 총들-은 개인수교가 아니라 사무실 수교로 잡혀있는 품목이고요.”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려서 카테고리 B에 속해있는 권총 리스트를 모니터에 띄웠다.
“여기에 SR16하고 CZ75는 없는데?”
무심코 가이가 꺼낸 말에 쿠거를 제외한 대다수가 ‘이 자식 바보인가?’라는 표정을 지은 건 비밀도 아니다.
“중대장은 두정 다 개인물품입니다. 그리고 75가 아니고 85죠.”
모니터를 훑어보던 슬러거의 인상이 점점 안 좋아진다.
“이게 카테고리 B면 A나 C도 있다는 소리겠지?”
“물론이죠. 등급은 S, A, B, C의 4개입니다. 참고로 A등급 목록은 … 여깄습니다.”
린상병이 띄운 목록을 본 비스트가 당장,
“여기서 신청하면 안 되나?”
일말의 희망을 걸고 물어보지만,
“음, 신청은 가능하지만…, 수령할때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카테고리 A급 부대에서 땡겨가면 다시 회수해가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요.”
간단히 말해서 통합특수전부대인 8군단에만 해당하는 카테고리 S와 일선 전투부대에 해당하는 카테고리 A는 1st VFW에서는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FOX는 일선전투부대가 아니었다는 소린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장의 질문에,
“보직별로 장비유형별로 기준이 틀려집니다. [개인화기]유형일 경우에 [계약직 외국인 조종사]는 카테고리 B를 적용한다고 규정에 명시돼있죠.”
“복잡하구만. 뭐, 그렇다치고 다들 여기에 없는 품목은 어디서 조달하는 거야?”
슬러거는 포기하고 다른 루트를 찾기로 결심한 듯 하고 린상병도 걸맞는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 폼이 하루이틀 쌓인 행정병짬이 아닌가보다.
“보통은 미스터 호킨스한테 발주하는게 보통이고요. 2중대장도 그런 케이스에 속하죠. 가격 대비 품질은 적당하다고들 하더군요.”
“일단 B목록을 보지. 우린 여기 조종하러 왔지, LA한복판에서 법집행하러 온건 아니니까.”
이반은 지급품에서 찾기로 했나보다. 그 와중에 갑자기 레온이 머리를 디밀고 마우스휠을 돌려댄다.
“이거다, 베레타84. 어디보자~ 예비탄창 두 개에…. 야야 린상병, 이거 써보고 교환은 되냐?”
“아, 예. 수령시험으로 10발이내에서 가능합니다. 이걸로 할까요?”
“야, 상병, 나도나도 저거저거저거….”
“시간도 재고도 충분하니까 밀지마세요. 한명씩 처리해드릴테니까요.”
한바탕 드잡이질과 난리를 거친 후 신청한 품목들은,
“토카집트가 생각외로 재고가 꽤 있었군요, 준위님?”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싸고 적당한 성능으로 많이 풀린 토카레프의 9밀리 버전인 토카집트가 이반 준위에게 들어가고,
“비스트 상사님은 PPK/S죠, 380으로?”
“PPK는 너무 작다고, PP 리시버에 PPK 슬라이드를 조립한 PPK/S가 그립감은 좀 낫지. 이 정도면 충분해, 이미 저거 꺼내 쏠 정도면 개막장일텐데 뭐.”
이름에 접착제가 들어가는 술고래 영국인 첩보원이 쓰면서 유명해진 독일제 소형 호신용 권총의 미국판매용 잡탕모델이 비스트의 선택이다.
“어디보자, 239는 여기까지 오질 않네요. 225로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거야? … 씁, 어쩔 수 없지. 220보단 가벼우니까.”
가이는 시그239를 노렸었지만, 마침 들어와있던 재고들을 정규군 강습헬기 승무원들이 쓸어가버리는 통에 울며 겨자먹기로 P6를 신청했고,
“나도 P6."
뒤에서 자기 책상을 정리하고 있던 장도 같은 품목을 신청한다.
“그럼 남은건, 슬러거 상사님하고, 쿠거 하사님이죠?”
린상병이 신청서식을 작성해서 결재하고 확인해본다.
“난 그 호킨스한테 가보지. M11이 있으면 좋겠는데.”
슬러거는 못 되도 DAD9을 노리고 있으니 그렇다 치고, 쿠거는?
“난 집에서 보내준 걸 쓰면 되니까요.”
개인물품에서 크로스백 사이즈만한 플라스틱 케이스를 꺼내서 여는데….
“그게 말이지, 자기 콜사인이랑 같은 총을 보내준 거더란 말이죠.”
[평소]처럼 시로카제 선생, 삽화담당 멜론 선생, 어쩌다보니 또 담당이 돼버린 M군, [부장님]으로 이루어진, 호프집 한 테이블을 점령한 멤버들의 면면이다. 물론 명목은 [매지컬 퓨어☆] 다음 권을 위한 취재-라고 쓰고 덕질이라 읽는다.-를 빙자한 나들이 이후에 저물어가는 석양(?)을 벗삼아 맥주를 걸치고 있는 중이긴 한데….
“콜사인과 같은 총이라면 뭐죠?”
가장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는 M군의 질문이다.
“피에트로 베레타 M8000L 타입P 쿠거, 버전은 베이직이랄 수 있는 F. 경량형 슬라이드에 15연발 탄창을 끼운 약간 마이너한 물건이지. 아, 쿠거자체가 베레타중에서는 마이너 품목이구나. 생산은 되고 있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취급안 하는 경우도 있다네. 보통 알고 있는 베레타하고 구조도 좀 틀려서.”
“그러고보니 베레타92가 잘 안 보이네요?”
아무리 폭신폭신하고 모에모에한 일러스트가 주력이지만 뒤로는 폭풍간지 중년아저씨를 그려대는 멜론 선생이 의문을 표시한다. 그리다보니 권총도 자주 그리게 되는데, 특히 자주 그렸던 M92가 언급되지 않는 것이 의문인 듯하다.
“2중대에서나 그렇지,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화력, 적당한 가격으로 빠지는데 없이 들고 다녔다우. 카테고리 A에서도 재고량 20%이상은 언제나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1/5밖에 안 되잖아요?”
[부장]님이 태클을 거는데,
“다른 종류들의 점유율을 보면 그런 말이 안 나올걸요? 당시에 신규 제식으로 채용됐던 글록이 계약만료될때까지 40%를 못 채웠었고, 이전에 제식취급받던 하이파워가 가장 많을 때도 25%가 안 됐으니까요. 글록이 제식채용되기 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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